Woodges'woods

low-key life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통 속의 철학자’이자, 대낮에 등불을 들고 ‘인간’을 찾아 외치던 행위예술가이자, 평생 누더기와 겉옷 한 벌과 죽장을 하나 갖고 살았던, 자유로운 윤리적 인간의 원형 디오게네스. 플라톤이 ‘미친 소크라테스’라 불렀을 만큼 통념과 위선 그리고 야심에 대하여 통렬한 조롱과 야유를 퍼부었던 디오게네스에게도 자신이 칭송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누구였을까? 그것은, “막 결혼을 하려다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여행을 떠날 참에 떠나지 않은 사람들, 정치를 하려던 순간 정치를 하지 않은 사람들, 아이들을 기르려던 차에 아이들을 기르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군주들과 함께 살고자 했지만 그들에게 접근하지조차 않은 사람들”이었다(Laërce,1999:710). (…) 윤리적 인간은 청산과 시장 사이에서, 독신과 결혼 사이에서, 여행과 정주 사이에서, 고독과 사랑 사이에서 해리된 인간이다. 그 해리를 성찰하는 인간이다. 이런 분열이 가족, 부족, 민족, 인종 등의 정체성이 그에게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을 막는다 (p.97)

바울의 이 명령들은 특이하다. 그는 가령 진정한 신앙을 위해서 이제 세속적 삶을 모두 떠나라거나 비유대인의 경우에 할례를 받으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정체성을 도덕률을 부과하지 않는다. 대신, 좋은 삶의 형식으로서 그가 요구하는 것은, 현 상태의 내부에 부정성의 균열을 내라는 것이다. 결혼한 자는 결혼하지 않은 것처럼(hōs mē) 하라는 것. 바로 여기에 바울의 윤리학이 있는 것이다. 그 역시 디오게네스처럼 주체 내부의 불일치를 활성화시킨다. 그는 자기 자식의 ‘아버지’에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외부의 타자들 즉 세계와의 관계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게 될 것이다. 공동체의 모럴에 의해서 선험적으로 주어졌던 소임은 성찰적으로 괄호에 묶인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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