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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key life

신변정리

2025.2.17.

<데몰리션>(2015)

로스쿨 3학년 시기, 모두들 시험이 끝난 후 무엇을 할지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며 힘든 시간을 버틴다. 밥을 먹고 나서 잠깐의 수다 시간, 친구들과 나는 대화 소재가 고갈되면 ‘자신이 작성한 변시 후 소망 리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이미 서로의 소망 리스트를 익히 알고 있는데도, 처음 물어보는 것처럼 또 물어보고, 읊고 또 읊었다. 그들의 소망 리스트들은 대체로 매우 희망적이고 힘차고, 생산적으로 보였다. 해외여행 가기, 골프 배우기, 외모 가꾸기, 헬스, 라식 수술 등등.. 졸업한 선배들은 이제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긴 휴가라며 이 절호의 기회에 반드시 해외여행을 갈 것을 조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나 역시 남들과 비슷하게 여행, 운동 등을 대충 대기는 했지만 진짜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있었다. ‘신변정리’였다.

‘신변정리’. 어감이 좋지는 않다. 그러나, 사전에 의하면 그 뜻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자신의 주변에서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는’ 것일 뿐이다. 정리의 대상은 사물일수도, 관계일수도, 혹은 어떤 생각일 수도 있다. 10여년 간의 자취생활 동안 쌓인 수많은, 갖고 있기에도 버리기에도 애매한, 분류되지 않은 채 이곳저곳에 처박아둔 잡동사니들, 고민하지 않고 산 옷들은 나의 마음 한켠에 항상 무겁게 존재감을 지키고 있다. 그 정리되지 않은 잡동사니들은 그 자체로 이번 정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날 오랫동안 괴롭히던 어떤 감각에 대한 은유 같기도 하다. 마치 영화 <데몰리션> 주인공 데이비스의 ‘고장난 냉장고’처럼 말이다.

그 감각은 나의 삶을 내가 적절하게 장악하고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감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중학교 무렵부터인 것 같다. 삶의 아주 초입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그 무렵부터 나는 조종간이 고장나버려 당황한 조종사의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러니까 웃기지만 앞으로 다시 조종간을 잡는 법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대부분의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삶은 무척 단순했고 몇 가지 중요한 장부만으로도 나의 삶의 전 부문을 ‘장악’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계획표'(스케쥴 관리)’ 알림장'(단기 목표),’일기'(일상기록 및 성찰),’용돈기입장'(재정 관리) 등.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의 세계는 그런 몇가지 장부들로 관리되지 못할 만큼 방대해졌고, 관리를 한다고 하여도 그대로 실행하기 어려웠다. 고려해야할 카테고리가 많아졌고 결정을 내리기 위한 셈법은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차분하게 그 통제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움켜쥐고 그것을 최대한 경영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대의 ‘대변혁’을 일으켜 모든 것을 제자리로 가져다 놓기 전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제자리에 놓지 않겠다(혹은 대충 아무렇게나 놓겠다), 라는 마음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모든 것은 그저 분류되지 않은 채 쌓이고, 흘러갔다.

매우 추상적으로 들릴 것 같다. 나조차 이런 요상한 마음상태, 혹은 기제의 정체가 뭔지 아직도 명확하게 규명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 속의 폐허를 정리하지 않고 그 위에서 뭉기적대듯이 사는 것은 하나의 ‘사고회로’로 고착되어 이제는 나라는 사람의 행동양식의 일부를 구성한 것 같다. ‘기존의 것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면 안된다’라는 강박은 많은 순간 나를 꼼짝 못하게 한다. 쉬이 다음 스텝을 밟지 못하고 결정과 행동을 유보한다.

긴 연애를 마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연애의 결말로 여겨지는 ‘결혼’. 그러나 결혼이야말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카테고리를,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무수하게 파생되는 카테고리를 들이는 일이다. 공동생활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관리대상들을 선사할 것이고, 배우자의 친족관계는 나의 것이 되며, 만약 출산을 한다면 그 아이의 삶은 당분간 온전히 내가 관리하고 책임져야 한다. 삶의 복잡성과 무질서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정리되지 않았고 내 작디작은 삶의 카테고리들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마당에 그 거대한 카오스를 들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꽁꽁 숨겨둔 분류되지 않은 잡동사니 더미들이 전부 정리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그것을 보여주기 싫었다.

모처럼의 긴 휴가가 주어진 지금, 나는 그토록 벼뤄왔던 대 정리를 하고 있는가? 나는 가장 먼저 신변정리의 상징적 행위로서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물건들을 내다 팔거나 다 버려서 짐을 간소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부끄럽게도 게으른 나는 아직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시험이라는 단기 목표가 사라진 후 잠시 수면 아래 잠겨있던 거대한 삶의 불확실성, 그리고 새롭게 발생한 시험 합격 여부라는 불확실성에 압도당해 물먹은 솜처럼 가만히 누워만 있다.

한편으로는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처럼 이러한 분류되지 않은 잡동사니, 완성되지 못한 채 남은 것들, 규명되지 않는 ‘나’에 대한 수수께끼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인생인가 싶기도 하다. 삶은 산만한 것임을 인정하기. 완벽히 정렬되지 않은 것들, 완결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집착과 강박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그런 것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또 그러다 보면 테트리스 블럭의 한 줄이 맞춰져서 사라지듯 어느 순간 우연하게 삶은 간결하고 명료해질 수도 있다.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내 방에는 벌써 -시험 이후에 발생한- 많은 새로운 것들, 그리고 그에 따라 소화해야 하는 생각과 감정들이 쌓여간다. 아직 버리지 못해 쌓여있는 수험서들, 밀린 관리비 고지서들, 지난 주말에 다녀온 대학 친구의 결혼식 청첩장, 감명깊게 보고 소감문을 꼭 써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으나 쓰지 못한 영화의 티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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