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rendt, The Decline of the Nation-State and the End of the Rights of Man(chp.9), in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New York: Meridian Books, 1958

Summary_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인 유럽 사회의 정세 불안은 곧 유럽의 정치 시스템의 숨겨진 구조를 폭로했다. 이러한 폭로와 함께 특정 집단들은 갑자기 보호 경계선 바깥으로 쫓겨났고, ‘예외현상’으로 처리되었다. 당시 유럽 사회의 분위기는 이러한 예외적 상황들에 대한 냉소주의, 광범위하고 대상없는 일반적인 증오와 정치의 분열, 그리고 무관심으로 설명된다. 이 분열의 분위기는 소수민족간의 상호적대감으로 발전하고, 두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청산으로 인해 두 희생자 집단이 출현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이해되었던 인권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 국적없는 사람들과 소수민족들에게는 그들을 대표하고 보호해줄 정부가 없었고, 소수민족 조약이라는 예외법 아래, 혹은 절대적 무법의 조건 아래에서 살아야했다.
1장에서 이 글은 그 무국적자들이 양산된 경위에 대해 상세히 논한다. 국민국가의 내적 분열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체결된 평화조약이 양산한 소수민족과 그 혁명, 그리고 망명운동과 함께 시작된다. 평화조약은 부적절한 것이었는데, 전쟁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전쟁의 충격의 전체 윤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부와 남부 유럽의 국적 문제를 국민국가의 확립과 소수민족 조약의 도입으로 해결하려고 했음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주민의 동질성과 정착이라는 국민국가의 출현을 위한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지역에 전통적 해법을 처방한 것으로서, 단순한 미봉책에 불과했다. 평화 조약은 많은 민족들을 한 국가안에 넣고 그들 중 일부에게 ‘주도민족’이라는 지위를, 다른 민족들에게는 동등한 파트너라는 (명목상) 지위를, 그리고 나머지 민족들에게는 ‘소수 민족’이라는 지위를 배당했다. 이 조약은 해당 민족들에게는 지배와 예속의 관계를 공식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신생국가들에게는 오로지 자신들만 지켜야 하는 것으로서 차별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국가의 자유와 자결의 단계에 도달한 적이 없는 1억명의 유럽인들을 더 이상 설득한 논리가 없다는 사실이 유럽의 기존 질서의 유지라는 목표를 가진 평화조약의 정치적 동기였다. 그러나 소수민족의 요구를 무시했던 기존 국가 통치시스템의 병폐가 승계국가의 건설로 치유될 수 없었던 것은 자명했다. 오히려, 이 소수민족 조약은 이 민족들에게 위험한 믿음을 갖게 했다. 즉 자국 정부가 없는 민족은 인권을 박탈당한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인데, 이는 인권 선언과 주권을 결합시킨 프랑스 혁명, 그리고 소수민족들의 권익 보호를 정부가 아닌 국제 연맹에 맡겨버린 소수민족 조약에 근거한 것이었다.
국제 연맹의 정치인들은 오히려 소수 민족보다는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신생 국가들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했고, 국민국가라는 틀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소수민족의 ‘동화’를 기대했다. 소수민족은 이러한 국제 연맹에 대해 분노하고, 불신했다. 이들은 “소수민족대회”로서 문제를 직접 처리하고자 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유럽 국가 내에 조직된 민족 집단들의 회의”라는 이름으로서 자신들의 국제적인 성격을 드러내보임으로써 연맹조약의 배후의 ‘지역 원칙’을 반박한다. 이 소수민족들이 초국가적으로 분포해있다는 사실은 국가 안보에 위험이 될 수 있는 요소였고, 연맹조약은 각국마다 분리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이 사실을 무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두 대회를 주도한 것은 모든 승계국가에 살고 있었던 독일인과 유대인들이었다. 문제는 소수민족의 공동의 이익이 아닌 자기 민족의 이익이 이 대회 구성원들의 토대가 되었고, 그나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유대인과 독일인과의 관계가 해체되면서 대회는 의미를 잃게 된다.
소수민족 조약의 핵심은 실질적인 적용보다는 국제 연맹에 의해 보장된다는 사실에 있었다. 즉, 한 나라 국민들만이 시민이 될 수 있고, 같은 민족 혈통을 가진 사람들만이 법의 보호를 누리며, 다른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완전히 동화되지 않거나 자신의 혈통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예외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국가가 법의 도구에서 민족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국민국가 내부의 민족과 국가, 민족의 이익과 법 제도 사이의 불안한 균형이 민족 자결권이 인정받고 국가 의사가 모든 법제도보다 우선한다는 확신이 수용됨으로써 깨졌고, 이는 국민국가의 분열의 시발점이었다. 물론 소수민족들은 합법적인 ‘예외 현상’으로서 정치 통일체에 속했고, 이러한 논리는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 권리 없는 무국적자들의 존재는 ‘인권’의 아이러니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양도할 수 없다’고 간주된 인권 이념은 사실상 문명화된 시민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최소한 자국 정부의 보호를 상실했고 이들의 보호를 위해서는 국제 협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무국적자’라는 용어는, 전후에 그러한 맥락이 삭제된 ‘난민’으로 변한다. 무국적의 불인정은 본국 송환을 의미하는데, 그러나 본국은 대체로 이를 거부하고, 따라서 무국적자의 수는 전쟁 후에 더욱 늘어났다. 이 무국적자가 될 가능성은 꾸준히 증가했고, 이제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어도 시민권의 박탈이 고려되고 있는 불길한 상황이다.
이 무국적자들의 출현으로 국민국가가 입은 첫번째 손상은 인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망명의 권리의 폐지였다. 고대로부터 시작된 망명의 권리는 피난민과 그를 수용한 국가를 보호해주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 망명의 권리는 영토를 넘어서까지 자국민을 보호하려고 하는 국가의 국제 권리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 때문에 성문법이나 헌법, 국제 협정 어느 곳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없으며, 정상적인 법제도로 충분치 못한 경우에 예외적인 도덕적 호소로서 공허한 실존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권이 처한 운명과 같다. 두번째 충격은 이들을 제거할 수도 없고 망명국가 국민으로 전환시킬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부들은 국가-국민-영토라는 삼위일체를 이탈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또 점점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내전에 싸운다는 것이었는데, 이 국적없는 민족들은 시민권을 포기하고 출생 국가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자신의 국적을 어떤 정부와 동일시할 수 없더라도, 동화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국적에 대한 강한 애착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국가와 완전히 유리된 민족 중심의 무국적자들은 서부의 전통적인 국민국가로 유입됐다.
무국적자에 대한 대응은 본국송환과 귀화 두 가지였는데, 이 모두 실패하면서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한다. 첫번째로, 본국 송환의 시도는 비합법성의 연쇄와 확산을 낳았다. 당당하게 추방시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국가는 무국적의 비합법성 때문에 명백하게 비합법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이 제약받은 윤리적 고려, 재입국의 우려, 접경국가와의 우호적 관계 등 때문에 본국송환은 몇몇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었다. 한편, 귀화 역시도 망명의 권리가 폐지된 것과 같은 이유, 즉 대규모의 귀화는 불가하다는 사실 때문에 실패했다. 귀화 역시도 예외적, 불가피한 경우에 외국 영토에 들어간 개인들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었다. 유럽의 국가들은 기존 귀화인들에 대한 귀화 취소, 대량 국적 박탈 등의 조치를 통해 무국적자들의 정착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국적자는 확산되었다. 귀화 시민 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지위도 악화되었고, 1930년대 이들은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외국인들은 본국 송환보다 무국적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고, 이는 그들이 1차대전 이후로 발견한 무국적의 장점이었고, 또 다른 무국적의 양산 기제가 된다. 이런 무국적 문제는 즉 자국민과 외국인의 구분, 국적과 추방의 문제에서 주권 국가의 권리에 악영향을 미친다. 더 중요한 것은, 무국적은 점점 더 많은 거주자들이 법의 관할권 밖에서 살 때 그 국가의 법제도의 구조 자체에 손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무국적자는 자신의 신분상 거주할 권리와 노동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법을 위반해야 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범죄자가 되어서만, 법의 위반자로서만 해당 국가의 시민과 동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무국적자들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범죄자가 되거나, 또 하나는 천재가 되는 것인데 이는 확실히 그들에게 사회적 위치를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 권력과 자율성은 피난민의 유입과 비례하여 증가했고 동시에 경찰국가로의 전환될 위험성이 커져갔다. 국민국가는 보호 권리를 상실한 사람들을 위한 법을 제공할 능력이 없었고, 이를 경찰에게 넘긴 것이다. 특히 전체주의 정권에서 원래 강했던 경찰의 권력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된다. 그러나 비전체주의국가에서도 무국적자 집단이 증가하면서 경찰이 조직한 불법 형태가 나타났고, 무국적자에 대한 이들 경찰들의 대응은 실질적으로 전체주의 국가와 대등했고, 협력했다. 이들 경찰은 국가 안전을 구실로 게슈타포 및 GPU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며, 공식 정부와는 무관하게 행동했다. 나치가 결국 점령 국가의 경찰로부터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지원을 받았던 것은, 무국적자의 증가로 인해 각국의 경찰이 이들을 지배하기 위해 독자적인 권력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무국적자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로 1919년 평화 조약 이래로 반복되고 있다. 오직 국제적인 보호에 의해서만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킬 수 있었던 유대 민족은 소수민족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평화조약이 산출한 최초의 무국적자들은 대부분 승계국가 출신으로서 조국의 새로운 소수민족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받기를 원치 않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것은 오직 소수민족 보호시스템밖에 없었고, 이는 유명무실했다. 히틀러를 비롯한 정부들은 무국적자 문제를 유대인 문제로 치환시키고 이들을 일소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전쟁 후에 영토를 식민지함으로써 유대인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풍선효과처럼 다른 난민들, 아랍인, 팔레스타인, 인도 등에서 반복되었고, 더 많은 무국적자들이 양산되었다. 이러한 무국적자의 저주는 국민국가의 존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봉건사회의 질서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이 무효가 되고, 이는 국민국가의 성격에 배치되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의 무능력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날수록 국가는 경찰의 권력으로 통치하려는 유혹에 저항하기 어려워진다.
2장에서는 이렇게 국민국가가 분열되고 무국적자가 발생하는 일련의 상황 속에서 드러난 인권이념의 역설과 한계에 대해 논한다. 인간을 법의 근원으로서 삼은 18세기 인권선언은 세속화되고 해방된 사회에서 인간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인권은 양도할 수 없고 다른 권리나 법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인권의 원천이자 궁극적인 목표였다. 이 인권은 국민주권으로부터 보증받고 자치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양도할 수 없는 일부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권선언에 들어있는 역설은 그것이 전제하는 인간이 추상적인 존재라는 것이고, 사실상 국민의 해방된 주권, 민족의 자주권에 기반을 두고 있음이 드러난다. ‘인간’은 국민이라는 사실은 점차 자명해졌다. 자국정부가 없어진 이들을 보호할 권위와 제도가 없음이 드러났고, 국제기구 등에 의한 비국가적인 보호는 정부들이 주권 침해라며 반발했을 뿐 아니라 관련 민족들도 스스로도 인권에 호소하지 않았다. 이 무국적 민족들은 국민의 권리의 상실이 곧 인권의 상실로 이어짐을 확신하고, 더욱 ‘국민적 권리’,고유한 민족 공동체에 부착되고자 했다. 역사적으로도 인권 개념은 사실상 달리 의지할 데가 없는 이들을 위한 예외 권리로서, 부차적인 권리 취급을 당해왔는데, 그 이유는 이미 시민권이 구체적인 법의 형태로 인권을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권은 양도할 수 없다고 추정되지만, 주권 국가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 나타날때면 인권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권의 상실이 가져오는 경험은 첫째로 고향의 상실이다. 자신이 구축한 독특한 관계의 장소 전체를 잃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또 이들은 정부 차원의 보호의 상실을 겪는데, 자국 내에서 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법적 지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인정되던 망명의 권리는 이들의 수가 너무 많게 되자 예외로 처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권리를 잃은 사람이 무엇보다 무죄였고, 이는 책임의 전적인 결여라는 의미에서 정치적 지위를 상실했다는 인정이자 권리를 상실했다는 기호였다.
이러한 상황은 인권 개념에 들어있는 많은 난점들을 말해준다. 이 무국적자들의 상황은 우선 시민권의 상실이 절대적인 권리 상실을 수반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권리를 상실한 사람들이 겪은 재난의 본질은 어느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들에게 법이 존재하지 않는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탄압하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었다. 인권의 본질로 간주된 자유의 권리도 마찬가지이다. 육체적 안전이나 의사의 자유도 그들의 상황을 바꾸지 못했는데, 그들의 생존을 국가에게 강요할 수 있는 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의사는 더이상 그것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할 권리가 아니라 의사를 밝힐 권리를 빼앗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권리’의 존재가 대두된다.
18세기의 인권 이념의 한계는 이런 정치 조직의 상실에 해당하는 권리를 표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천성으로부터 이러한 권리가 직접 발생하며, 단 한사람만 존재해도 그것이 부여한 권리와 존엄성은 유효하고 실재적이라고 가정했기 떄문이다. 이는 18세기 역사로부터 해방된 인류가 ‘자연’이라는 개념으로서 역사의 자리를 대체하고, 역사보다 인간에게 덜 낯선 것으로 간주되는 이 자연이 인권 개념의 기초가 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자연으로부터도 해방되었고, 역사와 자연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모두 낯선 것이된다. 이제는 인류라는 이념 그 자체가 ‘권리를 가질 권리’ 또는 개인들의 권리들을 보장할 수 있는 정초적 개념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인데, 그 가능성은 의문스럽다. 버크가 수행했던 프랑스 인권 선언에 대한 비판, 즉 우리가 누리는 권리는 자연법도, 신의 명령도, 인류 개념도 아닌 국가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은 타당해보인다. 인권의 복구는 실질적으로 국민적 권리의 확립이나 복구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수용소의 포로들에게 자연권은 그저 추상적이고 적나라한, 야만인에게도 부여된 것일 뿐이었고, 과거 문명인으로써 누렸던 권리를 보호했던 국적을 더욱 갈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무국적자들은 자연의 상태로 되던져졌다. 공동체와 그 안에서의 정치적 지위, 그리고 의미있는 행위를 가능케하는 법적 인격을 잃은 인간에게는 정확히 사생활의 영역에서만 표현되는 특성만 남는다. 이렇게 단순히 주어진 영역은 공적 영역에 영구적인 위협이 된다. 사적인 영역은 보편적인 차이와 구분의 법칙에 근거하는 반면 공적 영역은 일관되게 평등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평등은 우리가 정치생활을 통해 산출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지 못하는 소여의 차이들이 형성한 낯섦과 이질성은 인간 평등의 한계를 상기시키고, 이는 인간이 변화시킬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서 이때 인간은 파괴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어떤 행위가 그 차이에 필연적으로 귀착될 때, 우리는 단순한 차이만으로 규정되는 동물종이나 다름없어진다. 시민이라는 균등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적 영역 밖으로 던져진 이들의 상황이었다. 이런 삶이 증가한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적 삶과 인간의 공동 협조와 노력의 결과물인 문명을 위협한다. 또 바로 그 문명이 그 자신의 한가운데로부터 수백만의 사람들을 야만의 조건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야만을 산출하는 데 또 다른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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