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___
인식론적 체계의 불가능성에 대한 두 가지 대답과 그 난점
(회의주의 입장에서 본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아그리파 5트로펜’은 피론-회의주의자인 아그리파가 어떤 대상에 대한 참된 앎의 명제를 내놓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주장에 내재한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정당화의 전략들을 논변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것은 1) 의견의 불일치(diaphonia), 2) 서로 다른 두 진리명제 중 하나의 참을 입증하는 근거제시요구의 무한소급, 3) 지각표상과 사유판단의 상대성 4) 무한소급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근거제시 없이 도입되는 가설적 전제 5) 근거를 근거 지어야할 것으로 입증하는 순환적 상호성(dialelle)이다.
요컨대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믿음(P)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P라는 믿음이 있다면, 지각판단과 사유판단의 상대성으로 인해 한편에는 Q라는 이와 상반되는 주장 역시 존재할 수 있다(3 Tropus). 그렇다면 P의 주장자는 의견불일치의 상황에 놓이게 되며(1 Tropus), 자신의 믿음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정당화의 요구에 맞닥뜨린다. 그는 P에 대한 근거로 R1을 제시한다. 그러나 R1 자체에 대해서도 정당화가 요구되므로, R1은 그에 대한 근거인 R2를 필요로 하고, R2는 R3를 필요로 하는, 근거제시의 무한소급 문제가 제기된다(2 Tropus). 주장자는 하나의 명증한 사실(제1원칙)을 제시함으로써(4 Tropus), 혹은 근거들이 상호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을 보임으로써(5 Tropus) 이러한 마감될 수 없는 근거제시의 상황을 돌파해보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가설제시는 임의적 독단에 불과하며, 순환 논증은 확장된 동어반복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주장자는 최종 정당화에 실패하게 된다. 회의주의자들에 의하면 모든 ‘참’이라고 주장되는 ‘믿음’은 이 5가지 트로펜으로 환원될 수 있고, 위와 같은 이유로 참임이 입증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P,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Q, R, S와 같은 주장들 사이에서 무엇이 ‘객관적’으로 참인지 판별할 수 없으므로,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회의주의는 ‘참된 앎의 체계의 구축 불가능성’이라는 덫을 놓았다. 한편 합리론자인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는 확실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자신들만의 인식론적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회의주의가 던진 덫을 극복하고자 했다.

먼저,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의 3단계를 통해 감각경험, 외부사물의 존재,그리고 지성적 인식의 진리성에 대한 믿음을 전면적으로 무너뜨린 후, 확실한 제1의 토대인 코기토 명제를 세운다. 이후 지성적 인식, 외부사물의 존재에 대한 확실성을 보증받음으로써 인식론적 체계를 연역적으로 재구축하기 위해, 그것들에 빗장을 걸고 있는 악령의 가설을 제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신 존재 증명에 돌입한다. 그는 관념의 실재성의 표상적 실재성과 형상적 실재성으로 구분하고, 전체 작용 원인 안에는 적어도 결과에 있는 것만큼이 존재해야 한다는 ‘인과원칙’을 도입한다. 관념의 표상적 실재성의 크기는 각 대상의 형상적 실재성과 완전성의 크기에 비례한다. 이 두 구분과 인과원칙을 종합해 ‘관념’이라는 대상에 적용하면, ‘나’의 형상적 실재성을 능가하는 표상적 실재성의 크기를 가진 관념이 내 안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내가 낳을 수 없는 관념이라는 명제가 성립한다. 그런데 내가 명석판명하게 사유하는 불완전성의 관념은 내가 무한한 완전성의 관념을 전제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이것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나로서는 낳을 수 없는 관념이다. 따라서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자인 신은 나의 외부에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한편 스피노자가 보기에 자연은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이자 실체인 신 그 자체이고, 그것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인과의 그물망이다. 인간은 그 실체가 이러저러하게 변용된 양태로서 다른 개별적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인과 질서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참된 앎의 체계를 구축해나가는 인식론적 과업에 있어서도 관념을 획득하고 난 후에 이것의 진리성을 확보하는 외부의 기호를 다시금 모색하는 게 아니라, 곧장 가장 완전한 존재자인 신에 대한 관념, 즉 참된 관념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순행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때문에 그의 신 논변의 핵심은 이러한 실체가 유일함을 밝혀냄으로써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남김없이 하나의 실체 안에 집어넣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실체, 속성, 양태에 대한 정의와 공리를 선언하고 이로부터 유일실체로서의 신의 존재를 연역해낸다. 먼저, 정의상 실체는 최소한 하나의 속성을 가진다. 속성은 곧 어떤 실체를 그 실체이게끔 하는 본질인데, 그렇다면 두 개 이상의 다른 실체는 서로 동일한 속성을 공유할 수 없다. 한편 서로 다른 두 실체는 공통된 것을 가질 수 없으므로, 이들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공리상 다른 것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에 의해 존재해야 하기에, 실체는 존재를 본질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실체는 유일하다. 신은 정의상 있을 수 있는 모든 무한한 속성을 무한한 종류로 가지고 있는 실체이기에, 구별되는 다른 실체는 존재할 수 없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양자에게 있어서 신은 무한한 실체이며,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작용인것처럼 이해되는 듯 하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코기토 주체로부터 신을 역행적으로 연역해내는 전략을 취했다. 즉 실제 발생의 순서는 무한에서 유한인데, 연역의 순서는 유한에서 무한의 방향으로 배치한 것이다. 한편,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양 순서는 동시에 진행되며 순행적이다. 즉 인식론적 체계 구축의 순서와 존재론적인 발생의 순서에 있어 모두 무한하고 완전한 실체인 신을 시작점으로 둔다. 또한 둘은 무한 실체로서의 신의 소재에 대해서도 입장이 사뭇 다르다. 데카르트에게 있어 신은 인식주체를 비롯한 모든 자연의 바깥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반면 스피노자에게 인식주체를 비롯한 모든 전체는 실체 안에 존재한다. 즉, 스피노자의 신은 자기 자신의 작자이면서 자신의 결과를 자신의 내부에 산출하는 내재적인 신이다.
이후 이들은 인식의 성립과 확장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각자의 인식론 체계를 구체화한다. 데카르트는 신 존재 증명 이후 방법적 회의에서 무너뜨렸던 지성적 인식, 외부사물의 존재, 감각경험들을 악령의 가설이 없어진 상태에서 차례로 재검토하고 재구축한다. 먼저 수학적 지식과 같은 지성적 인식이 곧장 구출된다. 그 다음으로 외부 사물의 현존이 검토되는데, 데카르트는 표상적 실재성, 형상적 실재성의 구분과 인과원리의 종합을 다시금 활용해 감각관념은 실제 존재하는 어떤 원인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며, 그 원인으로서 외부물체는 현존하는 것으로 구출한다. 가장 마지막에 쌓이는 감각관념 인식적 진리를 확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성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를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참된 관념이 우리에게 본유적 도구로서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장 완전한 신은 사유하는 동시에 행동하기 때문에, 즉 지성과 의지가 분리되어있지 않기에, 관념은 그 대상이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표상적으로 존재한다. 스피노자의 신 개념으로부터 도출되는 이 두 가지 전제에 의해, 이미 관념의 질서와 사물의 질서는 평행적, 병행적으로 대응되어있고, 각 질서 내의 개물들은 각각의 질서 안에서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으므로 참된 관념으로부터 연역된 관념은 확실성 뿐 아니라 해당 사물의 실체에 부합하는 설명을 제공하는 적절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참된’ 앎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 개념은 각자의 체계를 논증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서로 다른 방법론적인 위상을 가진다. 데카르트에게 있어 신 개념은 제1의 토대인 코기토 주체가 외부 세계에 대해 명석판명하게 사유한 관념은 외부세계와 대응되는 참이라는 논변을 전개하기 위한, 즉 인식적 확장 과정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당면하게 되는 중간적 과제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즉 코기토 주체가 가지는 주관적 확실성이 객관적 확실성의 위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수단적이고 보조적인, 그러나 결정적인 논증인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신 개념은 전체 체계에서의 공리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인식론적 토대는 코기토로, 존재론적 토대는 신으로 이분화시킨 데카르트와 다르게 모든 스피노자에게 신은 존재론적 인식론적 체계의 출발점이다.
이들 합리론자들의 답은 아그리파가 제시한 5트로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데카르트의 신 논변의 논리적 구조에 대해서는 순환논증의 혐의가 제기될 수 있어 보인다. 유한실체로서의 코기토 주체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체계상 무한실체로서의 신에 의해 피조되는 의존적인 것이면서도, 인식론적으로는 무한실체를 연역해낼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신은 악령의 모습으로 가능적으로 존재하다가, 코기토 주체의 명석판명한 사유에 의해 무한하고 완전한 신으로 ‘소급적으로’ 복권된다. 이렇게 신을 소급적으로 복권시키는 순서로 구성된 논변은 무한실체인 신이 사유실체인 코기토 주체 외부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구성되는 효과를 불러온다. 결과적으로 코기토는 마치 신과 대등한 견지에서, 서로가 서로의 확실성을 떠받치는 순환의 형상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한편 스피노자는 무한한 실체는 유일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러한 실체 안에 있으며, 그 실체가 이러저러하게 구현되고 변용된 양태라는 유일실체론을 구사함으로써 데카르트가 가지는 순환논증의 오류를 극복하는 것 같지만, 더욱 강력하게 4트로푸스인 ‘임의전제’의 혐의에 휘말린다. 먼저 그의 시작점은 원인 없는 존재로서 무한하고 완전한 ‘신’이 존재한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의 인식론은 이러한 존재론적인 임의전제에 의거한다. 우리는 그것에 의해 창출된 양태로서 이 신에 대한 참된 관념을 본유관념으로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은 마치 모든 것을 시작시키는 빅뱅의 작은 점과도 같은데, 회의주의자의 견지에서 보자면 근거제시 없이 도입되는 심리적 믿음과 의지적 결단에 불과하다. 이것이 문제되는 이유는 논리적으로는 제 1트로푸스와 3트로푸스에 의해 스피노자의 “신은 자기 원인이자 사유와 의지가 통일된 실체”라는 신 개념 A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그와 대립되는 ~A를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논리적으로는 그로부터 연역되는 모든 논증 역시 따라서 무화될 수 있다.
그들 각각이 제시한 신 개념을 A라고 하면 ~A가 제시되었다고 가정할때 그들의 논변 속에서 신 개념이 내재적으로 가지는 파괴력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데카르트에 있어서 ~A는 최소한 방법적 회의의 단계까지는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 단계까지는 그가 사후적으로 복권하는 완전한 신의 개념 A가 괄호쳐진 채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코기토 이상으로 인식론적인 확장을 할 수 없으며, 인식주체 바깥의 외부 세계에 대한 객관적 확실성의 통로의 빗장을 푸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스피노자의 경우 훨씬 심각한데, 그의 신 개념에 ~A가 논의의 대전제부터 전면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기에, 논의를 시작할 수 없다.
두 철학자의 인식론적 체계에 있어 신 개념은 탈출구인 동시에 그 체계를 무화시킬 수 있는 논리적 난점이다. 특히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신은 자신의 인식론적 체계를 all-or-nothing의 방식으로 구조화할 수 있는 것으로서, 절대적이면서도 그것과 비례하는 내적인 파괴력을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20-2 서울대학교 이행남 교수님의 ‘서양근대철학’을 수강하며 작성한 답안을 일부 수정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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