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__
로크의 이율배반과 흄의 회의주의적 일관
데카르트와 같은 합리론자들에게 있어 본유관념과 인과관념은 그들의 토대주의적 논증에 있어 마치 참인 것처럼 도입되는 중요한 전제 중 하나다. 로크와 흄은 본유관념과 인과관념을 비판하며, 감각 지각에 기초해 그들만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을 구축한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앎의 양태와 한계에 있어, 이들은 상이한 입장을 보인다.
본유관념을 태어나자마자 즉시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성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의식하고 동의하게 되는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이러한 난점을 해소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로크는 반박한다. 영혼이 지각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진리가 영혼에 각인되어있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이성의 사용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동의하게 될 일반원리들이 있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거짓이기 때문이다. 또한, 분석적 명제로부터 도출되는 동의가 본유관념의 현존을 증명한다는 논변에 대해서도 로크는 반박한다. 이러한 명제들에 관한 동의 역시 습득된 능력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로크는 경험주의적 입장에서, 실체 관념, 신 관념과 같은 본유관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 경험을 통해 관념을 획득함을 주장한다. 이후 전개될 본격적인 인식론에 앞서 그는 본유관념을 기각함으로써 종래의 형이상학의 중요한 토대에 일격을 가한다. 먼저 로크는 본유관념이 있다는 논변에 대해 논한다.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어떤 원리들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고, 그러기 위해서 그것은 항구적이어야 하며,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영혼 속에 그것들을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변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보편적 원리의 존재를 곧바로 본유관념의 현존으로 연결시키는 비약과 보다 근본적으로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원리의 현존’이라는 임의전제이다. 로크는 전자에 대해서, 만약 모두가 동의하는 원리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본유관념을 도입하지 않고서도 해명될 수 있다면 본유관념은 불필요한 가설이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후자에 대해서 그는 모두가 동의하는 원리는 없음을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반박한다. 아이나 백치의 사고에서는 본유관념의 옹호자들이 ‘누구나 동의하는 원리’로 여기곤 하는 동일률, 모순율 같은 간단한 일반원리조차도 발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도덕률’과 같은 실천적인 견지에서의 원리와 관련해서는 보편적 원리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더욱 자명하다.
흄은 인간 이성의 두 번째 탐구 대상인 ‘사실들의 문제’에 관한 앎에 있어서, 우리가 이러한 추론적 앎을 도출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원리는 ‘인과관계’라고 말한다. 흄은 이 인과관계의 관념을 시간적 선후성, 공간적 근접성, 그리고 필연적 연관성이라는 세 가지 구성요소로 분석한다. 앞선 두 가지의 구성요소는, ‘결과사건과 원인사건의 시·공간적 연속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과’ 관념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흄은 인과관념을 짓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이고 모호한 세번째 구성요소인 필연적 연관성의 관념에 대해 탐구한다. 사건 A,B와 각각의 유사범주에 속하는 사건 A’, B’, A’’, B’’ 등이 시공간적 근접성을 이루고 항상 잇따라 일어날 때, 두 사건은 비로소 필연적 연관성 관념까지 갖추어, ‘인과’의 관념을 형성하게 된다. 흄은 대응인상의 유무를 살펴봄으로써 관념의 견실성을 판단하는 그의 경험주의적 원칙에 근거해 ‘인과관념’이라는 복합관념을 면밀히 검토한다.
시간적 선후성과 공간적 근접성은 쉽게 대응하는 인상을 찾을 수 있다. 한편, ‘필연적 연관성’ 관념은 그렇지 않다. 흄은 ‘작용인’과 같은 용어로써,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념을 어떤 실체에 내재한 ‘힘’으로 전치시켜 그것의 필연성을 주장하곤 하던 종래의 형이상학적 설명도 기각한다. 외감과 내감의 견지에서 모두 살펴봐도, 이러한 ‘인과적 힘’에 대한 인상은 얻어질 수 없다. 외감의 경우, 감각을 통해 현상되는 것만으로는 우리는 두 개별 사건만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며, 두 사건의 ‘필연적 연관성’을 보증하는 인과적 힘의 인상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나의 신체의 운동이나 행위에 대한 나 자신의 인과력’에 대한 반성이라는 내감을 통해 인상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과적 필연성에 대한 내감이 성립하려면 언제나 작동대상에 대해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매커니즘에 대해서도 감각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의 정서에 생생히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신체는 우발적이고 즉자적으로 작동하며, 그 인과적 힘에 대한 인상을 우리는 생생히 느낄 수 없으므로 이 역시 기각된다.
로크의 본유관념 비판은 합리주의 전통에 맞서 근대 경험론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흄의 인과관념 비판은 로크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을 극한으로 밀고 나간 경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비판은 연장선 상에 놓인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인식의 양태과 한계를 설명하는 데 외부의 실재를 상정하는지 여부에 있어 이들은 갈라진다.
먼저, 이들은 모두 감각 경험을 세계에 대한 앎을 획득하는 최초의 경로로 설정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로크는 본유관념을 기각하고 나서, ‘관념’의 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은 ‘경험’에서 유래함을 선언한다. 경험은 외적 감각과 내적 반성을 뜻하며, 특히 이 중 로크가 우선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외적 감각이다. ‘백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각종 감각경험에 둘러싸이며 최초의 관념을 얻고, 이후 반성작용을 통해 수많은 관념을 조형해나간다. 흄 역시 로크가 ‘외적 감각’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게 ‘인상’이라는 강렬하고 생생한 감각지각을 주관적 앎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이며, 특권성을 가지는 재료라고 말한다. 다만 흄은 로크가 ‘관념’이라고만 명명한 것을 ‘인상’과 ‘관념’으로 구분한다.
한편 감각경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세계에 대한 앎을 얻는 양태는 둘에게서 상이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로크에게 있어 제 1성질은 물체에 본원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성질이며, 1성질의 감지불가능한 부분이 우리의 감각에 산출하는 힘이자 그 감각된 성질이 제 2성질이다. 제 1 성질의 관념은 물체들이 ‘실제로’ 지닌 성질과 유사하지만, 제 2성질의 관념은 그렇지 않다. 즉 로크는 ‘사물의 본성’이 존재하며, 제1성질은 그것과 유사하며 진리성을 보유하고, 제 2성질은 그것에 의존하지만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흄은 로크처럼 이러한 외부의 실재를 상정하지 않으며, ‘앎’의 획득으로 여겨지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경험된 것을 바탕으로 미경험된 것을 추론하는 우리의 상상력과 정서라고 말한다. 인과관념을 기각하고 난 후, 그는 우리가 ‘필연적 인과성’이라는 앎으로 여기는 것은 사실 항상 잇따라 발생하는 감각지각의 경험과 그것을 습관적으로 결합하는 우리 영혼의 자연적 본능이며, 상상력의 작용에 의한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즉 로크는 앎이 외부대상이 지닌 성질의 힘이 우리에게 작용하여 전이되는 것으로 본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흄이 비판하는 형이상학자들의 ‘인과력’과 사실상 크게 다를 바 없는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흄에게 있어 앎은 우리의 지각과 우리 내부의 경향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세계의 대상과 앎을 한계짓는 방식과 태도에서 둘은 중대한 차이를 보인다. 로크에게 있어 지식은 관념 간의 일치와 불일치에 대한 지각이다. 그는 지식은 오직 경험을 통해 얻은 관념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내리면서도, 이 지식의 종류에 ‘실재적 존재’를 포함시킨다. 이것은 마음 내부의 관념과 관념이 아니라 관념과 마음 바깥의 사물과의 일치를 따지는 것이다. 그는 동일성, 관계와 같은 직관지와 논증지, 즉 연역적 지식만을 객관적이고 참인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지식’으로 한정하고, 감각적 관찰이 요구되는 이 ‘실재적 존재’에 관한 지식은 사실상 ‘개연성’을 가지는 ‘믿음’으로 제한한다. 감각적 경험주의에서 출발해 다시금 악마의 가설을 걷기 전의 데카르트의 상황으로 회귀한 것이다. 다만 데카르트는 절대적인 확실성을 보증받고자 회의를 밀고갔다면 로크는 ‘개연성’ 만으로도 우리 삶에 충분히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그린 것이다.
반면, 흄은 로크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외부 사물’과의 매칭에 대한 강박을 폐기한다. 그는 경험주의적 전제에 철저히 입각해 외부의 실재를 단호히 괄호치고, 우리에게 ‘감각된 것’에 대해서만,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만 논의한다. 때문에 사실의 문제에 있어 흄이 말하는 지식의 한계는 매우 명약관화해서, 다소 비관적이기까지 하다. 객관적 확실성과 필연성은 ‘실재’와의 대응으로는 물론, 애초에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관찰이 축적될수록 강해지는 개연성만이 있으며 만일 하나의 반례가 생긴다면 그러한 개연적 추리 마저 뒤집힐 수 있다는, 학문을 매우 위태로운 기반에 놓일 수 있게 하는 귀납의 문제를 제출하는 데 이르는 것이다.
요컨대 로크는 본유관념 비판으로 ‘감각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는 통로를 열었다. 흄의 인과관념 비판은 지식의 추론에 있어서 ‘필연성’의 가정을 기각했다. 이것은 본유관념 비판에 빚진 귀결이면서도 로크의 이론적 체계에 내재한 모순적인 이원론을 깨뜨리는 것이다. 로크는 경험적으로 알려진 것의 적절성을 궁극적으로는 경험적으로 알려질 수 없는 절대적 차원과 연관지음으로써, 자신이 처음 설정한 경험주의적 전제와는 배치되는 시도를 했다. 한편 흄은 우리가 왜 특정한 앎을 확실한 것으로 ‘간주’하는지의 문제를 탐구함으로써 이 이원론적 구도를 폐기하며, 지식의 적절성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감각경험이라는 틀 내에서 평가할 수 있는 규준을 마련했다. 그 결과 ‘앎’은 실재와 무관하게 우리의 감각경험에 의거해 더 ‘개연적’이거나, 덜 개연적인 것만이 있게 되었다.
*2020-2 서울대학교 이행남 교수님의 ‘서양근대철학’을 수강하며 작성한 답안을 일부 수정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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